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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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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7일 에베소서 2장 강해(10) - 평안
  • 2021.11.06
  • 조회수 1365
  • 추천 0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 에베소서 2:17~20 -
  
     
   예수님과 이별을 앞둔 제자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많은 위로와 권면과 가르침을 주셨고 또한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들 중에 하나가 바로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히브리인들은 서로 만났을 때나 헤어질 때 “샬롬”을 인사말로 쓰고 있습니다. 이 히브리여 “샬롬”이 “평안”을 의미한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적 유산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반대되는 요소를 제지하는 힘의 평형을 이루는 데서 발생합니다. 장대비가 내리는 들판의 높은 절벽, 그 어딘가에 작은 동굴이 있고 거기에 새의 둥지가 있습니다. 어미 새는 그곳에서 새끼들을 날개 그늘 아래 품고 있습니다. 어미의 품에서 새끼 새들은 내리는 장대비와 상관없이 단잠에 빠져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서로의 반대되는 요소를 제지하는 힘의 평형’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과 심판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두려움이 구체적이지 않을 뿐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내일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은 염려와 두려움도 많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인간이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원수 되었고 또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4~16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은 비로소 평안을 선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평안은 그냥 받지는 못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오직 주께 가서 그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또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2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욕심과 집착 버리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만 얻을 수 있는 평안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틀림없는 것은 내면에 내재된 근심과 두려움에 대해서 힘의 평형을 이루는 능력을 주께서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화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복음을 거절하였기에 성령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먼저 그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전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소수의 유대인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이들에게도 평안의 복음은 동일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17절은,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시간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이 먼저 인 것이 분명하지만, 교회가 시작되고 나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하고 교회를 핍박하였기에 “먼데 있는 너희에게”가 우선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중에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도 평안합니다. 
                             (4부 예배 시간에 계속)